현재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난 스타 선수들이 만약 다른 팀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많은 잠재력을 가진 선수일수록 많은 클럽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마련이며, 어떤 클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선수의 커리어는 천지차이로 변할수도 있습니다. 이 선수들이 만약 다른길을 택했다면, 지금의 명성을 가질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오히려 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요?
출처: Transfermarkt
킬리앙 음바페 > RB 라히프치히 (2015)
2015년 분데스리가 2에 속해있던 RB 라히프치히의 랄프 랑닉은 AS모나코의 스트라이커였던 킬리앙 음바페의 영입을 시도했고 좋은 대화를 나눴지만, 막판에 그의 아버지가 끼어들어 그의 이적을 막았다. 당시 랑닉은 RB 라히프치히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기전이었고, 음바페의 아버지는 이 점이 음바페에게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랑닉은 2015년 6월 라히프치히의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이미 그를 영입할수 있는 타이밍은 놓친 상태였다.
리오넬 메시 > 리버 플레이트 (2000), 에스파뇰 (2005), 인터밀란 (2006)
메시만큼 이적설에 많이 휘말렸던 선수도 없을것이다. 2000년 아르헨티나의 클럽인 리버 플레이트는 메시의 입단 테스트까지 진행했지만 최종적으로 그를 영입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2005년 바르셀로나는 그의 에스파뇰 임대를 고려하기도 했고, 2006년 인터밀란은 그의 영입을 위해 1억 5000만 유로의 바이아웃 조항을 거의 발동 시킬뻔 하기도 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말모 FF > FC 바이에른 뮌헨 (2001)
2001년 당시 최고의 유망주중 하나로 꼽혔던 즐라탄을 영입하기 위해 바이에른 뮌헨측은 직접 스웨덴으로 날아와 말모측과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그들은 말모측이 요구한 800만 유로의 이적료에 동의하지 않아 협상은 결렬됐다.
네이마르, 산토스 > 레알 마드리드 (2013), 로코모티브 모스크바 (2008)
2013년 레알 마드리드는 네이마르의 영입을 위해 바르셀로나와 첨예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네이마르는 실제로 레알 마드리드와 메디컬 테스트까지 진행하기도 했지만, 결국 재정적인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이적은 무산되고 말았다. 2008년에는 로코모티브 모스크바가 그의 영입에 근접하기도 했지만, 선수 본인이 러시아에서 뛰는걸 원치 않아 이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스포르팅 리스본 > 아스날/유벤투스/발렌시아 (2003)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맨유로 이적하기전 많은 클럽들이 그의 영입을 노렸다. 그 중 유벤투스와 아스날은 구체적인 오퍼까지 제시했지만 거절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근접했던건 라리가의 발렌시아였다. 발렌시아는 500만 유로의 선계약금까지 지불했던 상태였다. 하지만 내부적인 문제로 결국 계약은 틀어지고 말았고, 호날두는 맨유행을 선택하게 됐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레흐 포센 > 제노아 (2009)/블랙번 (2010)
레반도프스키가 2010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2009년 그는 제노아와 협상을 한적이 있으며, 블랙번 역시 그의 영입에 관심을 보였었지만 당시 아이슬랜드 화산 폭발로 인해 양측의 만남이 불발되 이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호나우지뉴 > 도르트문트 (200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3)
호나우지뉴는 두차례나 이적에 근접했던적이 있었다. 2001년 도르트문트는 그레미우와 호나우지뉴의 이적에 합의를 했지만, 정작 호나우지뉴는 도르트문트가 그에게 너무 큰 클럽이라는 생각을 하고 이적을 거절했다. 대신 그는 PSG로 이적했다. 2003년 그는 맨유로 이적에 거의 근접했었지만, 바르셀로나가 막판에 하이재킹에 성공했다.
카카, 상파울로 > 바이엘 레버쿠젠 (2002)
2002년 바이엘 레버쿠젠의 스포팅 디렉터는 미하엘 발락의 대체자를 물색중이었다. 많은 후보중 하나가 카카였다. 레버쿠젠은 카카와 개인 협상에는 합의했지만, 그 해 브라질이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상파울로가 그의 몸값을 800만 유로로 인상시켰다. 그 가격은 레버쿠젠에게는 너무 높은 가격이었다. 1년뒤 밀란이 그들이 요구한 금액을 지불하고 그를 영입했다.
안드리 셰프첸코, 디나모 키예프 > 베르더 브레멘 (1997)
1997년 베르더 브레멘은 디나모 키예프의 유리 막시모프를 영입했다.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 디나모 키예프의 스포팅 디렉터인 렘케는 당시 유망주 스트라이커였던 안드리 셰브첸코의 영입을 제안했지만, 막시모프의 이적료가 꽤 높았던 탓에 베르더 브레멘은 그 제안을 거절할수밖에 없었다. 그 해가 셰브첸코가 기량을 만개한 시즌이었다. 그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다섯골을 터뜨리며 세계가 주목하는 스트라이커로 떠올랐다.
호나우두, 크루제이루 > VfB 슈투트가르트 (1994)
PSV, 바르셀로나, 인터밀란, 레알 마드리드를 거친 호나우두는 90년대 최고의 축구 스타였다. 하지만 가장 처음으로 그의 영입을 원했던 유럽의 구단은 분데스리가의 VfB 슈투트가르트였다. 당시 U19팀의 코치였던 랄프 랑닉은 브라질로 날아가 그의 영입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슈투트가르트는 당시 400만 독일 마르크를 지불하길 원치 않았다. 대신 그들은 밀란으로부터 지오바네 엘베르를 200만 마르크에 영입했다.
가레스 베일, 토트넘 > HSV (2008)
가레스 베일이 함부르크로 이적?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실제로 2008년 여름 그의 함부르크 이적은 성사 직전까지 갔었다. 당시 베일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에 불과했고 토트넘의 감독이었던 마틴 욜 감독이 함부르크에 부임했던 때였다. 토트넘은 욜 감독에게 베일의 영입을 제안했지만, 함부르크는 700만 유로의 이적료를 지불하길 원치 않아 이적은 무산됐다.
프랑크 리베리, 바이에른 뮌헨 > 첼시 (2009)
리베리가 없는 뮌헨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날뻔한적이 있다. 2009년 리베리는 루이 반 할 감독때문에 뮌헨을 떠나고 싶어했었다. 루메니게는 "첼시로부터 매우 큰 오퍼를 받았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뮌헨은 리베리의 잔류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올리비에 지루, 첼시 > 밴쿠버 화이트캡스 (2019)
2019년 MLS의 캐나다 클럽인 밴쿠버 화이트캡스는 새로운 지명선수 (DP)를 물색중이었으며, 첼시의 스트라이커인 올리비에 지루를 타겟으로 했었다. 하지만 지루는 MLS로 이적한다면 더 큰 클럽으로 이적하길 원해 이적이 무산됐다.
필립 람, 바이에른 뮌헨 >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바르셀로나 (2002)
2002년 필립 람은 빌레펠트로의 임대이적이 임박했었다. 하지만 빌레펠트는 람이 수비에서 뛰기에는 너무 작다고 생각해 영입을 거절했다.
페테르 체흐, 베르더 브레멘 (2001)
2001년 18세이던 페테르 체흐는 베르더 브레멘에서 입단 테스트를 진행했고 만족할만한 실력을 보였다. 하지만 베르더 브레멘은 체흐의 소속팀이었던 FK 크멜이 100만 독일 마르크를 원했기 때문에 이적에 반대했다. 브레멘에겐 너무 많은 돈이었다. 대신 그들은 야쿱 비에르쵸프스키를 영입했다. 이후 스파르타와 렌을 거쳐 첼시로 이어진 체흐의 커리어는 전설이 되었다.
파벨 네드베드, 스파르타 프라하 > MSV 뒤스베르크 (1996)
1996년 봄 네드베드는 아직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따. MSV 뒤스베르크가 그의 영입을 원했다. 하지만 네드베드가 1996년 체코 최고의 선수 후보에 선정되자 스파르타는 태도를 바꿔 결정을 보류했다. 네드베드는 리그에서 환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결국 350만 마르크에 라치오로 이적했다.
프란체스코 토티, 로마 > 레알 마드리드 (2004)
토티가 없는 로마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2004년 그는 거의 떠날뻔한적이 있었다. 토티는 "나는 로마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는것을 고민했던적이 있었다. 그런 클럽이 이적을 제안한다면 다른곳에서 생활하며 플레이하는것이 어떨지 생각해볼 수 밖에 없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누엘 노이어, 샬케 04 > FC 쾰른 (2006)
당시 쾰른의 감독이었던 한스페테르 라투어는 키커와의 인터뷰를 통해 "노이어의 이적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은 그가 코리른으로 이적하는것에 동의했었다."라고 밝혔다. 2006년 노이어는 팀의 서드 골키퍼에 불과했다. 하지만 쾰른의 라이벌인 글라드바흐가 이적을 방해했다. 글라드바흐는 샬케의 세컨드 골키퍼인 하임메로스를 영입했으며, 그것은 노이어를 팀의 두번째 골키퍼로 만들어주었다.
티에리 앙리, AS 모나코 > 레알 마드리드 (1995)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직을 지낸 로렌조 산츠는 AS모나코의 앙리를 그의 주요 영입 타겟으로 정했었다. 하지만 앙리는 유벤투스로의 이적을 선택했으며, 이후 아스날의 레전드로 남았다.
야야 투레 > 아스날
호날두부터 즐라탄까지 아르셴 벵거 감독은 훗날 세계적인 스타가 된 선수들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영입을 시도했다. 야야 투레의 아스날 이적은 거의 마무된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벵거 감독은 야야 투레를 스트라이커로 쓰려했다. 투레는 이를 원치 않아 이적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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