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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Trip Diary/2014 Europe Trip

16. 여행 열다섯번째날 in Manchester - Match Day!

by EricJ 2014.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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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열다섯번째날 05.03.2014 in 맨체스터

오늘은 드디어 경기가 있는날이다. 경기 킥오프는 오후 3시이기 때문에 오전에는 일단 BBC방송국의 스튜디오가 있다는 Mediacity UK에 들러보기로 한다. 준비를 마치고 거리로 나서니 경기날이라 그런지 길거리엔 벌써 붉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인적도 별로 없이 조용하던 호텔 근처도 오늘은 사람도 많아졌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목엔 언제 들어왔는지 핫도그와 피쉬앤칩스를 파는 카트들이 들어와 이미 영업중이다. 경기가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좀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경기장 주변은 이미 축제분위기가 한창이다. 미디어시티 근처의 펍에서도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다. 특이한점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에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는점이다. 젊은 남녀들부터 어린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연령층도 다양하고 성별의 구분도 없다. 그렇게 주변사람들을 관찰하며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예쁘게 공원처럼 조성해놓은 Mediacity 근처를 걸어보았다. 그 안에서 뭘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미디어시티는 데여섯채의 거대한 건물이 모여 제법 큰 컴플렉스를 이루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축구 포스트매치 방송인 Match of the day와 유명 TV쇼인 Dragos's Den이 이곳에서 촬영된다는 얘기만 어디서 줏어들었을뿐 내부를 들러볼만한 시간은 없었다.



경기 시작까지는 아직 약 한시간 정도가 남아 우리가 게임을 볼 동안 시내에서 쇼핑을 하고 있기로 한 친구를 바래다주고 드디어 경기장으로 향한다. 경기시작 약 40분전 트램은 경기를 관전하기위해 올드 트래포드로 향하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가득하다. 한국 출근시간 지하철을 방불케 할정도로 옴짝달싹 하지 못할정도로 낑긴채 이동한다. 올드 트래포드역에 도착하자 썰물빠지듯 빠져나가는 사람들에 휩쓸려 경기장으로 가는길. 길 전체를 가득 매운 인파가 장관이다. 매경기 매주말마다 75,000여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클럽을 응원하기위해 경기장을 찾는다. (이날 경기또한 매진이었다고 한다) 이번 시즌 맨유의 성적이 좋지 않아 인기가 시들해지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던 나의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들은 팀이 지든 이기든 언제나 경기장을 찾아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다.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들이 아주 오래전의 맨유 유니폼을 입고 배지들을 줄줄이 달고 한손에는 지팡이를 다른 한손에는 손주의 손을 잡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경외심이 든다. 이런 팬들 하나하나가 맨유의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수 없는것이고 또 하루아침에 사라질수도 없는것이다. 그렇게 대단한 팬들 사이에 섞여 같은 마음으로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이다. 이미 승패는 상관이 없는일이다.



우리의 좌석은 Sir Alex Ferguson 스탠드의 가운데 맨 윗쪽이다. 엘리베이터따위는 꿈도 꿀수 없는일이고 약 7층높이의 좌석을 계단으로 올라야했지만 높은곳에서 경기장의 전체적인 모습을 내려다볼수 있다는점은 좋다. 경기시작이 임박하자 그 많던 좌석들이 전부 팬들로 가득하다. 경기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모두가 일제히 경기에 집중한다. 여기서 북미지역(MLS)의 스포츠 관람문화와 영국의 관람문화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내가 사는곳이 캐나다의 밴쿠버라 밴쿠버의 축구팀인 Whitecaps의 경기를 자주 보러 다니는데, 일단 가장 큰 차이는 밴쿠버는 경기장 내 술 반입이 허용되지만 영국은 금지라는점. 관중석 바깥에서는 음주가 가능하지만 관중석 안에서는 술을 마시며 경기를 관람할수 없다. 밴쿠버는 친구들과 함께 술도마시고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그들의 시간을 즐기며 경기를 관람하지만, 영국은 오로지 축구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 모두 친구 혹은 가족들과 함께 앉아있음에도 혼자온 사람들마냥 경기에서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심지어 경기에대해 이야기도 한마디 나누지 않는다. 오로지 탄성과 탄식 그리고 이따금씩 선수들을 향한 구호를 외치고 응원가를 함께 부를뿐 서로 말이 없다. 그만큼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프타임이 끝나고 복도로 나가봐도 모두들 TV를 통해 나오고 있는 전반전 하이라이트를 말없이 올려다보고 있다. 전반에 골을 허용해 지고 있는 상태로 전반을 마쳐 분위기가 더욱 심각했던것일수도 있지만 축구가 진행되는 그 시간만큼은 모두가 오로지 축구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결국 맨유는 이번 시즌 내내 보여준 문제들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무기력하게 패배를 당하고 말았지만 나에게는 더할나위없이 훌륭한 경험이었고, 이날 보았던 팬들의 모습은 아마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을것 같다.


이것으로 우리의 공식적인 여행일정은 모두 끝이다. 이제 남은 시간동안 여행내내 쌓아뒀던 추억들을 정리하고, 짐을 싸고,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즐거운 시간들이었지만 역시 마지막날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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